워싱턴의 항복
다음 달, 버지니아 연대 전체가 네세시티 요새에서 워싱턴과 합류했으며, 연대장이 사망함에 따라 워싱턴이 연대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연대는 제임스 맥케이 대위가 이끄는 100명의 사우스캐롤라이나 독립 중대로 보강되었는데, 맥케이 대위의 왕실 임명 계급이 워싱턴보다 높아 지휘권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7월 3일, 900명의 프랑스군이 공격해 왔고, 이어진 전투(네세시티 요새 전투)는 워싱턴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그 여파로 제임스 이네스 대령이 식민지 연합군 지휘권을 맡았고, 버지니아 연대는 분할되었으며, 워싱턴은 대위직을 제안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사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