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7월/8월에 열린 루산 회의에서 여러 장관들은 대약진 운동이 계획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중 가장 직접적으로 비판한 인물은 국방부 장관이자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 펑더화이 장군이었습니다. 펑더화이의 대약진 운동 비판 이후, 마오는 펑더화이와 그의 지지자들을 숙청하여 대약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잠재웠습니다. 마오에게 기근의 진실을 보고한 고위 관리들은 '우경 기회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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