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출생

부팔리노는 1903년 10월 29일 시칠리아 몬테도로에서 태어났습니다.

2이민

부팔리노는 1906년 가족과 함께 뉴욕항을 통해 미국으로 이민했습니다.

3정착

부팔리노는 뉴욕주 버팔로에 정착했으며, 십 대 시절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4조셉 바바라와 함께 일함

1920년대 초, 부팔리노는 뉴욕주 엔디콧에서 활동하던 또 다른 뉴욕 북부 밀주업자 조셉 바바라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5결혼

부팔리노는 시칠리아 마피아 가문 출신인 카롤리나 시안드라와 결혼했습니다.

6버팔로 마피아 조직원들

부팔리노는 많은 버팔로 마피아 조직원들과 함께 일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훗날 버팔로 범죄 패밀리와 미국 동부 해안의 다른 코사 노스트라 패밀리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부팔리노의 범죄 경력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칠리아계 미국인 범죄자들에게 가족과 씨족 관계는 중요했으며, 외부인이나 법 집행 기관이 침투할 수 없는 강력하고 비밀스러운 지원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7킹스턴으로 이주

부팔리노는 이후 1940년에 펜실베이니아주 킹스턴으로 이주했습니다.

8이민국 및 귀화국이 부팔리노의 추방을 시도함

1950년대 초, 이민국 및 귀화국은 부팔리노를 여러 차례 추방하려 했으나, 이탈리아 정부가 그의 재입국을 허용하지 않아 15년 동안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9프랭크 시런

부팔리노는 1955년 트럭 운전사 프랭크 시런을 만났는데, 당시 부팔리노가 그의 트럭 수리를 돕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시런은 나중에 그를 태우고 다니거나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부팔리노는 시런을 팀스터즈 국제 위원장 지미 호파에게 소개했습니다. 시런과 가까운 친구가 된 호파는 팀스터즈의 영역을 위협하는 노조원이나 경쟁 노조원을 암살하는 등 시런을 자신의 행동대원으로 활용했습니다.

10에드거 D. 크로스웰

에드거 D. 크로스웰이라는 지역 주 경찰관은 카르마인 갈란테가 바바라의 사유지를 방문한 후 주 경찰에게 정차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갈란테를 조사한 결과, 그는 면허 없이 운전 중이었으며 뉴욕시에서 광범위한 범죄 기록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11바바라의 사유지에 모인 강력한 마피아들

1957년 11월 14일, 미국과 이탈리아의 강력한 마피아들이 뉴욕주 아팔라친에 있는 바바라의 사유지에 모였습니다. 쿠바는 아팔라친 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으며, 특히 라 코사 노스트라의 섬 내 도박 및 마약 밀수 이권이 논의되었습니다. 국제 마약 거래 또한 아팔라친 의제의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뉴욕 의류 산업의 이권과 불법 행위(사업주 대상 고리대금업 및 의류 센터 트럭 운송 통제 등)도 아팔라친 의제의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12경찰이 바바라의 집에 주차된 많은 고급차를 발견함

1957년 11월 회의가 있기 전, 크로스웰 경관은 바바라의 집을 간헐적으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바라의 아들이 지역 호텔 객실을 예약하고 지역 정육점에서 대량의 고기를 바바라의 집으로 배달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의심을 품은 크로스웰은 바바라의 집을 계속 주시하기로 했습니다. 주 경찰이 바바라의 집에 주차된 많은 고급차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번호판 번호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차들 중 다수가 알려진 범죄자들의 명의로 등록되어 있음을 확인한 주 경찰은 지원 병력을 요청하고 검문소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13탈출

회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카스텔라마레 델 골포 출신이자 바바라의 직원인 바르톨로 구치아가 바바라의 사유지를 떠나던 중 경찰 검문소를 발견했습니다. 구치아는 나중에 생선 주문을 확인하기 위해 바바라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참석자들은 차를 몰고 도망치려 했으나 검문소에 막혔습니다. 다른 이들은 들판과 숲을 헤치고 가다가 비싼 양복을 망친 뒤 붙잡혔습니다. 많은 마피아 조직원들이 바바라 사유지를 둘러싼 숲을 통해 탈출했습니다.

14전국 코사 노스트라 회의

1957년, 보스 프랭크 코스텔로로부터 루치아노 범죄 패밀리의 통제권을 장악한 보스 비토 제노베제는 전국 코사 노스트라 회의를 개최하여 자신의 새로운 권력을 정당화하고자 했습니다. 제노베제는 버팔로 범죄 패밀리의 보스이자 위원회 위원인 스테파노 "더 언더테이커" 마가디노를 선택했고, 마가디노는 다시 펜실베이니아 북동부 범죄 보스인 조셉 바바라와 부팔리노를 선택하여 모든 준비를 감독하게 했습니다.

15바바라의 죽음

1959년 6월 바바라가 사망한 후, 위원회는 부팔리노를 공식적인 패밀리 보스로 인정했습니다.

16부팔리노 체포

1973년 4월 20일, 부팔리노는 FBI 급습으로 스크랜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주 간 상거래 방해, 사법 방해, 도박 및 장물 운송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나중에 5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습니다.

17경찰이 부팔리노가 운전하던 차를 세움

경찰은 사유지를 떠나던 부팔리노가 운전하던 차를 검문소에서 세웠는데, 차에는 제노베제와 다른 세 명의 남성이 타고 있었습니다. 부팔리노는 아픈 친구인 바바라를 병문안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체포된 모든 사람들은 각각 최대 1만 달러의 벌금형과 3년에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8갈취 혐의

1977년,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있던 잭 나폴리가 부팔리노가 뉴욕의 보석상에게 2만 5천 달러의 빚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증언하면서 부팔리노는 갈취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기소되자마자 부팔리노는 추가적인 범죄 혐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는 카포레지메 에드워드 시안드라를 대행 보스로 임명하고 자신은 패밀리의 일상적인 운영에서 물러났습니다.

19갈취 시도

1978년 8월 8일, 부팔리노는 갈취 시도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4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거의 3년 동안 복역했습니다.

20증인 살해 공모

부팔리노는 1981년 5월에 석방되었으나, 이번에는 증인 나폴리를 살해하려 공모한 혐의로 다시 기소되었습니다. 주요 검찰 측 증인인 지미 프라티아노는 1976년 부팔리노로부터 자신과 마이클 리지텔로에게 나폴리를 살해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21부팔리노, 10년형 선고

1981년 11월, 부팔리노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레븐워스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22조직의 세력 약화

부팔리노가 다시 수감되고 조직이 연방 수사 대상이 되면서 조직의 세력은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부팔리노는 출소했고, 노스이스턴 패밀리의 남은 운영권은 빌리 델리아에게 넘어갔습니다.

23사망

1994년 2월 25일, 부팔리노는 펜실베이니아주 킹스턴에 있는 네스빗 메모리얼 병원에서 90세의 나이로 자연사했습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스워이즈빌의 데니슨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24아이리시맨

부팔리노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2019년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조 페시가 연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