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출생

레닌은 1870년 4월 22일 심비르스크에서 태어나 6일 후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블라디미르의 애칭인 "볼로댜"로 불렸습니다.

2아버지의 죽음

1886년 1월, 레닌이 15세였을 때 그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그 후 레닌의 행동은 변덕스럽고 공격적으로 변했으며,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3카잔 대학교 입학

1887년 8월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레닌은 근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4사마라로 이주

1889년 9월, 울리야노프 가족은 사마라 시로 이주했습니다.

5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

1893년 말, 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변호사 보조로 일하며 독일 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당의 이름을 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자칭하는 마르크스주의 혁명 세포 조직에서 고위직으로 올라섰습니다.

63년 유배

1897년 2월, 그는 재판 없이 동부 시베리아로 3년 유배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신변 정리를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며칠간 머물 수 있게 되었고, 이 시간을 이용해 '노동계급 해방 투쟁 동맹'으로 이름을 바꾼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만났습니다.

7결혼

1898년 5월, 1896년 8월 파업 조직 혐의로 체포되었던 나댜가 유배지에서 그와 합류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우파로 배치되었으나, 레닌과 약혼했다는 이유로 당국을 설득해 슈셴스코예로 거처를 옮겼고, 1898년 7월 10일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8이스크라

유배 생활을 마친 후 레닌은 1900년 초 프스코프에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정당(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으로 개칭)의 새로운 기관지인 '이스크라(불꽃)'를 위한 자금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9피의 일요일

1905년 1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시위대 학살 사건은 1905년 혁명으로 알려진 일련의 시민 소요 사태를 촉발했습니다.

1010월 선언

1905년 혁명에 대응하여 니콜라이 2세 차르는 10월 선언을 통해 일련의 자유주의적 개혁을 수용했고, 그 후 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도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112월 혁명

1917년 2월,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페트로그라드로 개칭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식량 부족과 공장 환경 악화로 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2월 혁명이 발발했습니다.

12제헌의회 선거 예정

임시 정부는 1917년 11월에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할 계획이었으며, 레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민위원회의(Sovnarkom)는 예정대로 투표를 진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13암살 미수

1918년 1월, 그는 페트로그라드에서 암살 위기를 넘겼습니다. 당시 레닌과 함께 있던 프리츠 플라텐이 레닌을 보호하다가 총탄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14신경제정책

1921년 2월, 레닌은 정치국에 신경제정책(NEP)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볼셰비키 고위 간부들을 설득하여 그 필요성을 인정받았고, 4월에 법으로 통과되었습니다.

15소비에트 연방 수립

러시아와 그 주변 지역(현재 소련의 일부)에서 수년간의 내전 끝에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이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습니다. 레닌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지만, 당은 그의 사회주의적 비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6은퇴

반신불수 증상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일련의 기사와 자신의 정치적 '유언'을 비서에게 구술하여 1923년 1월 4일에 마쳤습니다. 이 '유언'에는 트로츠키와 서기장으로서 권력을 빠르게 통합하고 있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지도 하에 당이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7사망

1924년 1월 21일, 레닌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그날 늦게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