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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타임라인의 이벤트
  1. 로마 제국

    아우렐리아누스가 제국의 잃어버린 동부 속주로 눈을 돌리다

    272로마 제국

    272년, 아우렐리아누스는 제국의 잃어버린 동부 속주인 팔미라 제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곳은 팔미라 시에서 제노비아 여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제노비아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그리고 소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는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시리아 여왕은 로마로 향하는 곡물 운송을 차단했고, 몇 주 만에 로마는 빵 부족 사태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 아우렐리아누스는 황제로 인정받았고 제노비아의 아들 바발라투스는 '렉스(왕)'이자 '임페라토르(최고 군사령관)'라는 칭호를 가졌으나, 아우렐리아누스는 군대가 충분히 강해졌다고 판단하자마자 동부 속주를 침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 로마 제국

    아우렐리아누스가 트라야누스의 알리멘타 프로그램을 폐지한 것으로 여겨짐

    272로마

    아우렐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의 알리멘타(빈민 구제) 프로그램을 폐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로마의 장관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키에투스는 서기 272년에 알리멘타를 담당한 마지막으로 알려진 관리였습니다. 만약 아우렐리아누스가 "이 식량 배급 시스템을 폐지했다면, 그는 더 급진적인 개혁을 시행하려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3. 로마 제국

    티아나의 함락

    272티아나 (현 케메르히사르, 니데 주, 튀르키예)

    소아시아는 쉽게 수복되었습니다. 비잔티움과 티아나를 제외한 모든 도시가 거의 저항 없이 그에게 항복했습니다. 티아나의 함락은 전설을 낳았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그때까지 자신에게 저항하는 모든 도시를 파괴했으나, 꿈속에서 자신이 매우 존경하던 1세기 철학자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를 본 후 티아나를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4. 로마 제국

    팔미라의 함락

    272팔미라 (현 시리아 홈스주 타드무르)

    6개월 만에 그의 군대는 팔미라 성문에 도달했고, 제노비아가 사산 왕조로 도망치려 하자 팔미라는 항복했습니다. 결국 제노비아와 그녀의 아들은 생포되어 로마 거리에서 열린 개선식에서 황금 사슬에 묶인 채 행진해야 했습니다. 곡물 창고가 다시 로마로 운송되자 아우렐리아누스의 군인들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빵을 나누어 주었고, 황제는 백성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받았습니다. 페르시아와의 짧은 충돌과 이집트에서 찬탈자 피르무스와의 전투 이후, 아우렐리아누스는 273년 팔미라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번에 아우렐리아누스는 군인들이 도시를 약탈하도록 허용했고, 팔미라는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더 많은 명예를 얻어 '파르티쿠스 막시무스'이자 '레스티투토르 오리엔티스(동방의 복구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5.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아우렐리아누스가 알렉산드리아 시를 탈환하기 위해 싸우다

    272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서기 272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팔미라의 제노비아 여왕 군대로부터 알렉산드리아 시를 탈환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6. 로마 제국

    아우렐리아누스가 제국의 잃어버린 동부 속주로 눈을 돌리다

    272로마 제국

    272년, 아우렐리아누스는 제국의 잃어버린 동부 속주인 팔미라 제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곳은 팔미라 시에서 제노비아 여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제노비아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그리고 소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는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시리아 여왕은 로마로 향하는 곡물 운송을 차단했고, 몇 주 만에 로마는 빵 부족 사태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 아우렐리아누스는 황제로 인정받았고 제노비아의 아들 바발라투스는 '렉스(왕)'이자 '임페라토르(최고 군사령관)'라는 칭호를 가졌으나, 아우렐리아누스는 군대가 충분히 강해졌다고 판단하자마자 동부 속주를 침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7. 로마 제국

    아우렐리아누스가 트라야누스의 알리멘타 프로그램을 폐지한 것으로 여겨짐

    272로마

    아우렐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의 알리멘타(빈민 구제) 프로그램을 폐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로마의 장관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키에투스는 서기 272년에 알리멘타를 담당한 마지막으로 알려진 관리였습니다. 만약 아우렐리아누스가 "이 식량 배급 시스템을 폐지했다면, 그는 더 급진적인 개혁을 시행하려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8. 로마 제국

    티아나의 함락

    272티아나 (현 케메르히사르, 니데 주, 튀르키예)

    소아시아는 쉽게 수복되었습니다. 비잔티움과 티아나를 제외한 모든 도시가 거의 저항 없이 그에게 항복했습니다. 티아나의 함락은 전설을 낳았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그때까지 자신에게 저항하는 모든 도시를 파괴했으나, 꿈속에서 자신이 매우 존경하던 1세기 철학자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를 본 후 티아나를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9. 로마 제국

    팔미라의 함락

    272팔미라 (현 시리아 홈스주 타드무르)

    6개월 만에 그의 군대는 팔미라 성문에 도달했고, 제노비아가 사산 왕조로 도망치려 하자 팔미라는 항복했습니다. 결국 제노비아와 그녀의 아들은 생포되어 로마 거리에서 열린 개선식에서 황금 사슬에 묶인 채 행진해야 했습니다. 곡물 창고가 다시 로마로 운송되자 아우렐리아누스의 군인들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빵을 나누어 주었고, 황제는 백성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받았습니다. 페르시아와의 짧은 충돌과 이집트에서 찬탈자 피르무스와의 전투 이후, 아우렐리아누스는 273년 팔미라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번에 아우렐리아누스는 군인들이 도시를 약탈하도록 허용했고, 팔미라는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더 많은 명예를 얻어 '파르티쿠스 막시무스'이자 '레스티투토르 오리엔티스(동방의 복구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0.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아우렐리아누스가 알렉산드리아 시를 탈환하기 위해 싸우다

    272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서기 272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팔미라의 제노비아 여왕 군대로부터 알렉산드리아 시를 탈환하기 위해 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