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구스 강 전투
카리누스는 즉시 로마를 떠나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만나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판노니아를 지나던 중 그는 찬탈자 사비누스 율리아누스를 진압했고, 285년 7월 모이시아의 마르구스 강(현대의 모라바 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대와 마주쳤습니다.
카리누스는 즉시 로마를 떠나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만나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판노니아를 지나던 중 그는 찬탈자 사비누스 율리아누스를 진압했고, 285년 7월 모이시아의 마르구스 강(현대의 모라바 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대와 마주쳤습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역사가들마다 의견이 갈립니다. 한 기록에 따르면 마르구스 전투에서 카리누스의 군대는 용맹함을 발휘해 승기를 잡았으나, 카리누스는 자신의 아내를 유혹한 호민관에게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다른 기록은 이 전투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완승으로 끝났으며 카리누스의 군대가 그를 버렸다고 주장합니다. 이 기록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카리누스의 근위대장이었던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를 계속 유임시켰다는 사실로 뒷받침될 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마르구스 강 전투 직후 콰디족 및 마르코만니족과의 전투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결국 북부 이탈리아로 이동하여 제국 정부를 수립했으나, 이때 그가 로마 시를 방문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갈리아에서 시리아, 이집트에서 하부 다뉴브에 이르기까지 모든 속주에서 갈등이 끓어올랐습니다. 한 사람이 통제하기에는 너무 벅찼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는 부관이 필요했습니다. 285년 어느 시점에 메디올라눔(밀라노)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동료 장교 막시미아누스를 카이사르 직위에 임명하여 공동 황제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즉위 직후 로마에 입성했다 하더라도 오래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285년 11월 2일 사르마티아인에 대한 원정을 위해 발칸 반도로 돌아온 것이 확인됩니다.
왕국이 안전해졌다고 느낀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원전 285년 베레니케 왕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공동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위대한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원 아래 번영했으며, 기원전 3세기 건설부터 기원전 30년 로마의 이집트 정복까지 학문의 주요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카리누스는 즉시 로마를 떠나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만나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판노니아를 지나던 중 그는 찬탈자 사비누스 율리아누스를 진압했고, 285년 7월 모이시아의 마르구스 강(현대의 모라바 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대와 마주쳤습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역사가들마다 의견이 갈립니다. 한 기록에 따르면 마르구스 전투에서 카리누스의 군대는 용맹함을 발휘해 승기를 잡았으나, 카리누스는 자신의 아내를 유혹한 호민관에게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다른 기록은 이 전투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완승으로 끝났으며 카리누스의 군대가 그를 버렸다고 주장합니다. 이 기록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카리누스의 근위대장이었던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를 계속 유임시켰다는 사실로 뒷받침될 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마르구스 강 전투 직후 콰디족 및 마르코만니족과의 전투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결국 북부 이탈리아로 이동하여 제국 정부를 수립했으나, 이때 그가 로마 시를 방문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갈리아에서 시리아, 이집트에서 하부 다뉴브에 이르기까지 모든 속주에서 갈등이 끓어올랐습니다. 한 사람이 통제하기에는 너무 벅찼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는 부관이 필요했습니다. 285년 어느 시점에 메디올라눔(밀라노)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동료 장교 막시미아누스를 카이사르 직위에 임명하여 공동 황제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즉위 직후 로마에 입성했다 하더라도 오래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285년 11월 2일 사르마티아인에 대한 원정을 위해 발칸 반도로 돌아온 것이 확인됩니다.
왕국이 안전해졌다고 느낀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원전 285년 베레니케 왕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공동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위대한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원 아래 번영했으며, 기원전 3세기 건설부터 기원전 30년 로마의 이집트 정복까지 학문의 주요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